대략 진성 잉여짓 - 피자 삼발이로 초고층 빌딩 도전. ├뻘글장 <雜說板>

[대략 진성 잉여짓]



    동생녀석에게는 사탕껍질이라거나 껌종이 등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것을 모으는 묘한 습벽이 있습니다.
    물론 쓰레기통에서 긁어모은다거나 하는 처참한 짓은 아니고, 손에 들어오게 되면 보관하는 정도죠.
    비상금을 휴지심에 보관한다는 점도 좀 그렇지만 그건 다른 얘기고(...)

    하여튼, 동생의 그 괴랄한 컬렉션에 포함되는 것이 바로 '피자 삼발이'입니다.
    배달용 피자 박스의 중앙에서, 피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 그것.
    중저가형 배달브랜드 피자를 드셔보신 분들은 다 뭔지 아시겠지요.

    어느날 밤, 동생은 자신의 원대한 삼발이 컬렉션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삼발이 하나 = 피자 한판)


    이 녀석, 차라리 쿠폰을 꼬불쳐 올 것이지 이런 잉여스러운 컬렉션을... (머엉)

    동생 왈, 학교나 학원에서 누군가 피자를 쏘면 최소한 5~6판은 기본으로 오니 의외로 쉽게 모을 수 있었다는 듯.





    
    이 잉여스러운 모음집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이 내재된 잉여심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가지고 뭔가 할 수 있겠는데..'

(....오? 오오!!)


  좋았어. 쌓아 보자.

    이 잉여스러운 컬렉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도 잉여스럽고, 그 이전에 그 자체가 지극히 잉여로운 발상이었죠(...)





1. 첫번째 시도 - 옆으로 넓혀 보자.

    일단 쌓는 것은 문제 없고, 문제는 조형물 자체의 모양인데..
    기본적으로 모양새가 삼각이니까 위에서 봤을 때 삼각형의 각 꼭지점을 접붙이는 형태가 되면 좋겠더군요.



    도안 1.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초라해 보여서 해체.

    조금 더 웅장한 모습을 위해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도안 2.



    5층씩 쌓은 기둥을 각각 삼각형의 조형에 맞추어서 배열합니다.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한 기둥 사이의 공간에 삼발이를 하나씩 더 올리면...




    이런 모양이 되죠. 아아, 뭔가 좀 있어보이지 않습니까 (뭣)

    조금만 더 웅장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2단계 위에 3단계를 올리기로 결정.
    
    계획대로 3단에 이어 4단까지 올리기만 하면 제대로 된 조형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완벽한 시메트리의 미학을 느끼며  의욕을 내고 있었는데...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삼발이 하나가 중력에 순응, 자유낙하하며 조형 전체가 와르르르르.




(.....내 시간!! 내 잠!! 내 야망!!)



    이미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평소같았으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해야 할 때지만...

    하찮은 피자 삼발이 따위에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지는 듯한 느낌을 안고 잠자리에 들다니, 꿈에서도 삼발이한테 조롱당할 거라고요(...)




    그렇게 서서히 상승하던 잉여 게이지는 결국 폭발. 

    웅장함 따위는 집어치우고, 이번에는 최소한의 간단한 조형으로 최대한 높이 쌓아 보기로 했습니다.






2. 초고층 빌딩 도전 - 부르즈 칼리파 따위(...)



    일단 아래쪽에 아까와 같은 3개의 5단 기둥을 세우고, 

    바깥쪽 기둥의 두 꼭지점과 안쪽 기둥의 한 꼭지점에 삼발이를 얹어 2단계를 만듭니다.






    하다 보니 왠지 허전한 것 같아서 5단 기둥을 뒤쪽에 하나 더 추가.

    중앙 기둥의 꼭지점마다 2단계 삼발이의 꼭지점이 맞물리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꽤 그럴듯해 보이는 조형 완성.

    일단 1단계 기둥의 사이에 2단계의 기초를 올리고, 2단계를 몇층 더 올립니다.

    그리고 3단계는 1단계의 중앙기둥과 평행되는 위치에 놓고 쌓아 올리는 거죠.







    5단 1단계에 이어 2단계3단 정도만 올렸습니다. 더 올렸다가는 쓸데없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잉여스러운 조형물의 하이라이트 3단계는 더 이상의 장식 없이 그대로 쌓아올리기로 했습니다. 




(마우스는 돌리는 맛, 삼발이는 쌓는 맛)




    그렇게 어느덧 새벽 2시가 가까워 오고....

   피자 삼발이 잉여탑(...)은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쪼그려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쉴 겸 화장실에 갔다오다 보니 탑 자체가 상당히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유를 추론해 보자면...


    - 피자 브랜드(...)에 따라 삼발이의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 같은 피자 브랜드의 삼발이라도 모양이 그리 일정하지 않으며, 
       소재가 본래 무른 편이라 후천적인 변형이 쉽다.




    결론은, 이대로 층수를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쓰러질 거라는 거.






    어쨌든, 기울어져 있는 꼴을 보고 문득 이 조형물의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자의 사탑'.



.......




(....좋았어!! 계속 올린다!!)




    왠지 묘한 성취감이 들기도 하고, 언제가는 무너질 것임을 알고 나니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군요.

    삼발이를 다 쓰는 한이 있어도 저절로 무너져 버릴 때까지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올려라!! 올려라!!)


    평소같으면 이불 속에서 뒤척거릴 시간이지만 정신은 전에 없이 말짱, 눈은 초롱초롱.

    어느덧 30층(삼발이 갯수 기준)을 넘어가면서 의자를 쓸 수도 없어졌습니다.

    층수가 올라가면서 탑은 점점 더 기울어져 가고...
    



(아...이거.... 위험한데)


    어느덧 직립 상태에서도 카메라를 머리 위로 올려야 포커스에 들어올 정도로 커진 탑.

    왠지 이 정도면 자연붕괴가 가까운 것 같아 층수와 삼발이 갯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지상 35층, 삼발이 56개.    (사진 촬영 당시 기준)


    나...나는 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





    층수를 더 올리기 전에 (무너지기 전에) 근접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오오 그것은 잉여도의 끝.

    누가 그랬던가요, 인간은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쌓는다죠 (뭣)



    
    하늘을 향해 솟은 인간의 염원.
        
    그것은 이 아름다운 탑의 모습으로 현현하야 저 높은 곳으로 뻗쳐나가고 있습니다 (개소리)





    인간은 하늘에 닿고 싶어 첨탑을 올리고, 고층빌딩을 쌓지만 그조차 큰 산의 높이를 넘지 못하고 있다죠 (뭔소리)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이 탑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그리고 동시에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유인 즉슨, 정말로 많이 기울었었거든요(...)






    이미 남아있는 삼발이는 10개 미만.

    이대로 다 쌓아올릴 수 있다면 40층 및 9月32日의 신장(...)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37층, 58개째를 쌓아올리는 순간...


(비틀, 우르르르르르....)




.......




.......






    ...이, 이제 잘 수 있어.... (내 인생 한 점의 후회도 없다)




    그렇게 9月32日은 하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수면부족은 정말로 크리티컬이었지만(...)






    p.s. 여담이지만, 이 잉여프로젝트의 원흉인 동생은 전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같이 지켜보신 어머니 왈, 

            흩어진 삼발이를 비닐봉지에 주워담는 9月32日의 뒷모습이 애처로워(잉여로워) 보였다나 뭐라나;;



    p.s. 2. ...이건 대체 어느 밸리에 올려야 하는 걸까요;;




한 줄 요약: ....어느 겨울날 밤, 잉여짓의 끝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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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홍당 2010/01/15 19:07 #

    잉여의 사탑(....)

    왠지 이오공감에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 9月32日 2010/01/19 10:50 #

    이런 걸 이오공감에 올린다니요.. 잉여도 때문에 안됩니다;;
  • schneeig 2010/01/15 19:09 #

    9월32일님의 사탑~>~!!!
    이랄까? 잘만드셧네요 사탑이된사연은 안습이지만요...ㅡ.ㅡ;
  • 9月32日 2010/01/19 10:50 #

    제가 원해서 된 사탑이 아닌지라 말이죠(...)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고 있자니 꽤 괜찮군요;;
  • 린나 2010/01/15 19:49 #

    아흑. 마지막에서 그만 눈물을 ㅠ
    어쨋든, 뭐랄까. 수고하셨습니다 (?
  • 9月32日 2010/01/19 10:50 #

    드디어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 Allenait 2010/01/15 21:21 #

    ..피자를 얼마나 드신 겁니까
  • 9月32日 2010/01/19 10:51 #

    위에도 썼듯이, 동생이 학교이나 학원에서 누군가 피자를 쏠 때마다 모았던 겁니다;;
  • 매모리 2010/01/15 22:12 #

    저정도의 량이 라면은 얼마나 ....
  • 9月32日 2010/01/19 10:51 #

    아무래도 학원이나 학교에서 쏜다면 피자가 1순위인지라.. (머엉)
  • 허리가아프군 2010/01/15 23:43 #

    우훗 크고 아름다운 탑이군요.

    ps. 잉여짓과 잉여로운 발상은 사람이 아직 팔팔하다는 증거입네다

    자랑스러워 하세요.(?!)
  • 9月32日 2010/01/19 10:52 #

    여전히 임계치의 잉여도 언저리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지라 말이죠..
    저도 아직은 팔팔한 거군요!!
  • 세오린 2010/01/16 00:41 #

    멋진 물건이였습니다 ㅠㅠ
  • 9月32日 2010/01/19 10:52 #

    저는 보면 볼수록 자조적으로 돌아가는 건 대체(...)
  • Uglycat 2010/01/16 10:36 #

    맙소사...!
  • 9月32日 2010/01/19 10:53 #

    그야말로 잉여도 Max의 탑이었습니다;;
  • 너구리 2010/01/16 23:58 #

    컥.. 이런 멋진글이..
  • 9月32日 2010/01/19 10:54 #

    잉여스럽고도 멋진 탑이었죠;;
  • SCV君 2010/01/25 10:01 #

    수고하셨습니다;;
  • 9月32日 2010/01/25 18:52 #

    지금 생각해 보면 야밤에 왜 저런 짓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요... (머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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